3월 28일
아침에 예비군 훈련장에 갔어야 했지만 8시 40분쯤 일어나 가는 걸 뒤로 미뤘다. 전달받은 버그 리스트를 체크해 두고, 머리를 식힐 겸 판교로 드라이브를 했다. 사실 판교로 드라이브를 한 이유는 그곳에 사무실을 구하면서 이사도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교는 강남보다 저렴할 것이라 기대했고, 개발자 수급도 용이한 위치다. 30분 정도 차를 몰고 판교로 가서 부동산을 방문했다. 기대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무실은 강남보다 저렴하고, 넓었고, 도리어 큰 평수가 많았다. 그 공간을 채우면서 최고 효율을 뽑아내려면 적어도 10명 정도는 사무실에 상주하는 게 바람직해 보였다.
그렇게 두어 곳의 부동산을 다녀본 후, 나는 카페에 앉아 내가 앞으로 할 사업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1억이 넘는 사업 2개가 협상 테이블에 있었고, 10억 원이 넘는 계약건 역시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모두 대기 중인 것들 뿐이었고, 무엇하나 확정되지 않은 날이었다. 거기에 회사 투자 자문을 하고 다니면서 자본 시장 흐름을 보다 보니 내가 앞으로도 계속 IT 개발사를 운영하는 게 맞는 일일까 고민이 들었다.
판교에 올라온 높은 빌딩들 뒷면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부당한 돈을 거래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칼을 빼들어보자 결심을 하고 내가 아는 인맥에게 미팅을 모두 요청했다. 이 쓰레기 같은 블록체인 코인 판을 쓸어버릴 칼을 만들어보겠다고 말이다.
친구들을 비롯해 주변에 강력한 분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리고,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보안 회사 중 한 곳인 T사 대표님에게 콜드콜을 보냈다. 기자 분들을 포함해 언론사 분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누군가의 위법 행위를 감지하고, 증명하는 회사가 이 나라에 꼭 필요하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인맥을 통해 훌륭한 분들을 소개해주셨지만 모두 다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한 분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라며 크게 걱정하셨다. 이유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가 들통나고, 자신의 비리를 감추는 데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라는 걸 그분은 그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이 되려 하지 말고, 법의 집행은 검찰에 맡기고, 그는 “최대한 상생하는 모델로 비즈니스를 구축하라.”라고 권하셨다.
한 대표님은 칼보다는 장벽을 만드는 방향으로 힘을 쓰라 조언하셨다. 그는 인증서 사업 형태로 악인들을 걸러 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과거에 만들었다는 환경부 인증서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해 주셨다.
그의 조언을 감사하게 여겼지만 한 편으로는 인증서 모델을 채용한다면 또 다른 비리의 온상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온갖 형태로 사기와 세탁이 이뤄지는 이 시장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해자들은 욕망에 눈이 멀어 사기에 가담한 이들이 많았고, 내가 그들의 칼이 되어준다 해도 그들이 도리어 나를 찌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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