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벌써 다섯 번째 어쩌면 네 번째 인도네시아 출장이다. 인생 일대의 큰 사업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한 편으론 무척 지루하다.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1월 8일 나와 S는 첫 번째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9일 새벽부터 사귀기로 했다.
S는 나에게 있어서 어쩌면 완벽한 여자일지도 모른 생각이 들곤 한다. 착하고 배려심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우고, 집을 잘 정리한다. 내가 씻고 나오면 화장품을 하나하나 꼼꼼히 발라준다. 피부에 스며들도록 천천히 두드려준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감추지 않고 나처럼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해준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공허했다. 그래서 주말과 밤이면 텅 빈 시간들을 홀로 채우거나 아니면 쓸모없는 지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들은 친구일 뿐 연인이 아니다. 연인의 빈자리를 채우려 여러 시도를 해봤으나 부질없었다.
S는 나에게 Y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그녀가 얼마나 나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섭섭해하고 꼬시려고 했는지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실체는 없다는 걸 나도 알고 Y도 안다. 나는 호감 이상을 표시한 적이 없고, 그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분명 감정은 있었을 것이다. 아마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감정이 섞이진 않았을까. 나도 그 감정을 눈치 못 챈 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은 호감에서 어느 순간 분노나 혐오로 바뀌었다면 그녀는 애증으로 나를 대했던 것 같다.
사랑이 채워지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갈구하던 것들이 소박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지금의 나는 빚을 모두 갚고, 여윳돈이 생기면 어느 정도 안정한 삶을 바라고 있다. 집을 사진 못할지라도 전셋집이라도 구해 머물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고, 내 작업을 할 넓은 공간이 있기를 원한다.
피아노와 기타를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파트에 2대 차를 주차해도 넉넉하면 좋겠다. 냉장고에 먹을 음식도 있고, 함께 먹을 사람들도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삶이 풍성해져서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꿈은 바로 이곳에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들과 파트너로 좋은 관계를 맺기도 해야 한다. 왜냐면 내가 꿈꾸고 사랑하는 삶은 순전히 나와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만으로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전해지더라도 젊은 시절 맹수처럼 강인한 인물들을 만나고 나 역시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스러운 남편이나 애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풍파를 흔들림 없이 견딜 남자가 되려면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더 전문적이고 대범하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
나는 날아오르고 있다. 저 넓은 세상으로 말이다. 새장을 벗어난 사람처럼 아무것에도 묶인 것 없이 말이다.
드라마를 보다 영화를 보다 하며 지루한 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시간을 S와 보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먼 비행도 설레는 여정이 될 것 같다. 한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고 싶다. 그렇다고 인니의 파트너들이 싫은 건 아니다. 그들하고 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불편하기에 그럴 뿐이다.
여러 짐을 해결하고 싶다. 그것이 이번에 온 사람들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니.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싶다. 빚의 무게는 무겁다. 신용도 그렇다. 빚은 생기긴 쉽고 벗어던지기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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