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서른한 살에 꿈꿔왔던 것들 대부분을 이뤘었다. 그리고 딱히 마음속에 더 큰 욕심이 생기진 않았었다. 그 시점이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공허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운영해야 할 모기업의 자산은 1200억 원에 은행 설립이 이뤄지면 그보다 더 큰 자산이 들어와야 했고 그 사업에서 내 역할은 분명했다. 따뜻한 나라의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평온하면서도 한국의 쌀쌀함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저 여유가 생기면 유럽 곳곳에 별장을 사려고 했다. 정확히는 호텔 소유권이라 할 수 있다. 맨해튼보다 비싼 서울 땅에 투자를 하느니 사업적 목적이나 관광의 목적이나 자산의 헷징 측면이나 모든 면에서 알아봐 둔 유럽의 부동산들이 좋았다. 대서양이 보이는 곳과 지중해를 낀 국가 각각에 두면 참 좋았었겠다 싶었다.

그러나 사람일이란 게 의도대로 되는 건 없었다. 내가 뜻해서 그곳까지 가서 천억 원이 넘는 기업을 다루는 기회를 얻은 것도 아니고 내가 뜻해서 모든 일들이 다 무산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무척이나 공허했다. 세상 모든 일들이.

종종 방문한 청담동 사무실

글로벌 파트너 분들과 투자 설명회 시절

삼일회계법인 본사 라운지

딜로이트나 PwC나. KPMG나 EY나. 회계사와 컨설턴트 중에서 한 달에 8천만 원씩 받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과 일하다 보면 여러 딜을 진행하게 된다. 광산과 산업단지 사업은 채굴량만 조 단위였고 공장을 통해 만들어질 일자리와 인프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의 서명으로 수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룹사의 총괄 이사로 일한다는 것은 이러한 거대 계약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지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만 해낼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일들은 국제법과 회계 모두 아주 유능한 인물들이 참여해야 하고 함께하는 수많은 사업체의 입장이 통일되어야 한다. 그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제대로 한다 말할 수 있겠지.

복무했던 서울 공항으로 늦은 밤 드라이브 하던 시절

마음껏 꾸며둔 회사 장식장

하지만 나는 공허했다. 그 모든 것보다 그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고.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마무리될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건 상당히 불안한 일이다. 스스로 모든 걸 다 해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랬기에 이미 서른한 살의 나는 목적을 잃고 부유하는 배와 같았다. 그때쯤 만난 여자친구에게 푹 빠져있었지만 빠졌던 만큼이나 감정도 쉽게 사라졌다.

버킷리스트는 많이 채웠지만 정작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버킷리스트는 전혀 없었다. 가령 내 집 마련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집을 사느니 그 돈으로 수익성 부동산에 투자를 하거나 사업체에 자산을 두어 굴리는 선택을 원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집을 사라던 사람들은 모조리 고점에 물려 지금까지도 단 한 번의 고점 탈출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내게 있어서 목표는 언제나 사업과 몇 가지 경험뿐이었다. 사무실을 얻는 것. 직원들과 야유회를 가는 것. 회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 등. 나의 버킷 리스트는 내가 믿는 좋은 회사의 모습 속 찰나와 같은 사진들의 연속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나니 허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꽉 채워 지난 지금. 3년을 채워가는 지금이 되어 내가 가진 버킷 리스트는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대부분의 목표는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달성 난이도다. 달성 난이도가 너무도 높아 수많은 미래 중 아주 소수의 가능성만 도달 가능할 것 같다.

그중 첫 번째는 단 하나의 제품이라도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세계는 고사하고 지역 1위도 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1등을 해봤지만 세계 1위는 다른 수준이니 말이다. 이 목표는 많은 걸 도전적으로 만든다. 그 어떤 제품을 만들더라도 경쟁사를 제치거나 또는 독점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인간으로 살면서 한 번을 달성하기 어려운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하고 싶다. 제품 한 줄로 나를 설명하고 싶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OOO을 만든 사람으로.

두 번째는 1/10000에 도달하고 싶다. 만 명 중 한 명. 대한민국에서는 상위 5000등 이내로 살고 싶다. 순자산 상위 9000위가 되려면 현금성 자산 300억 이상이어야 한다고 한다. 5000위는 그보다 거의 몇 배는 높아야 될 듯하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1000억쯤 된다면 5000위는 가뿐히 들어가지 않을까.

그 정도 자본은 한국에서는 만들어내기 어렵다. 한국에 10조 이상되는 부자가 거의 없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려면 세계 최대 시장에서 플레이해야 한다. 더 크고 더 넓은 시장에서 자본으로 플레이한다면 가능하다.

앞서 두 개를 꼭 10년 안에 이루고 싶다. 이유는 10년이 넘어가면 부모님께 이 모습을 못 보여드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44세가 많으시고 어머니는 36세가 많으시다. 내가 40대 중반이면 아버지는 90세쯤 되시고 어머니는 80세가 넘으신다. 어쩌면 10년이 아니라 그보다 더 빨리 이별할지도 모르기에 나는 10년 전부터 언제든 부모님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살았다.

세 번째는 나를 믿어준 모든 이들에게 곱으로 돌려주고 싶다. 가족은 10배. 내 인생의 형제과 같은 이들은 3배. 다행히도 가족에겐 받은 게 10배씩 돌려줘도 크지는 않다. 나를 믿고 힘들 때 도와준 형제와 같은 이들. 친구들과 동료들. 사업 파트너들. 그들에게는 모두 3배씩 갚고 싶다. 밥도 세 배. 돈도 세 배. 그 어떤 것도 말이다.

만약 그렇게 다 갚고도 풍족하다면 그때부터는 세상을 위해 쓰고 싶다. 그게 내가 가진 세 가지 버킷 리스트다. 나에겐 달성하기 힘들지만 꼭 달성하고 싶은 세 가지 버킷 리스트가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서 다시 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든 큰 상관은 안 하고 싶다. 도착지가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도착할 수 있다.

이 세 개의 버킷 리스트도 달성하게 된다면 그때는 공허함이 아닌 충만함으로 살고 싶다. 원대로 펼치고. 뜻하는 바를 세계에 전할 힘이 생길 테니.

Comments

    More from Howdy의 블로그

    See all posts

    특별한 법칙은 아니지만 자주 생각하려는 법칙이 있다. 향기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이 법칙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상대를 유혹하라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이 원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이는 아주 간단한 원칙인데 동시에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법칙이기도 하다. 향…

    Sanghoon Han

    향기의 법칙

    Hearts 1Comments 110/07/2026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터지는 것이 인간사. 인간이 만든 것 중 무엇이 대단하다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완전하다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영원하다 말할 수 있을까. 영원한 것은 단 하나도 없고 먼지가 쌓이지 않는 것도 단 하나도 없다. 기회 역시 영원하지 않아서 영원할 것 같은 젊음…

    Sanghoon Han

    영원하지 않다

    Hearts 0Comments 010/07/2026

    이카루스는 태양에 가까이 가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높게 날았다. 깃을 붙인 밀납이 녹아 깃이 떨어져 나가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자유로 향하는 날개를 얻었을 때 태양을 향해서도 바다를 향해서도 안됐다. 고도를 유지하며, 섬세하게 바람을 타지 않는다면 어디로든 날아갈…

    Sanghoon Han

    자유의 날개

    Hearts 0Comments 010/07/2026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권리는 대부분 거래를 통해 획득했다. 참정권은 군복무, 참전으로 얻었고, 링컨의 노예제 해방을 위해선 산업화된 사회에서의 흑인 인권이 필요했다. 반면 노예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 이득이 되는 남부군의 입장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보았기에…

    Sanghoon Han

    민주주의 붕괴

    Hearts 0Comments 010/07/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