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집에 돌아왔다. 무척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늦게까지 모임을 가지며 이것저것 먹었는데도 속이 허전했다. 살이라도 잔뜩 찌려나 보다. 에너지를 꽤 소비했으니 많이 들어가는 것도 납득은 된다. 이런 날을 위해 컵라면을 사뒀다. 크지 않은 육개장 사발면 한 박스. 조그만 컵라면 30개가 들어있는 박스가 꽤 큰 안심이 된다. 적어도 30번은 무언가 먹을 수 있으니.
한참 배고프던 시절에는 컵라면 하나도 감지덕지했다. 온몸은 빼빼 말랐었고 옷을 살 여유도 없었다. 그때 그렇게 살았던 것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신이 있다면 그때 나라는 청년의 진면목을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이야기를 하기엔 그렇지만 세 명쯤 겹쳐서 누우면 자리가 없을 고시원에 돌아가서, 먹을 거라곤 밥 한 공기에 한 줌 남은 집에서 가져온 멸치 반찬이 끝이었다. 정말 한 줌 남은 딱딱한 멸치 볶음. 그걸 먹으면서 그 당시 연락하던 동생하고 전화를 했었다. 이런저런 내 삶에 대한 이야기. 그때 그 동생에게 지금 나는 밥 한 공기에 멸치 볶음 하나로 오늘 저녁을 보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재밌어하기도 하고 놀래기도 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동생하고 몇 년이나 사랑하는 사이가 될 줄은.
지나온 날들이 때로는 지긋지긋한 삶 같이 느껴졌지만 컵라면 같다고 느껴질때가 많다. 나는 그다지 컵라면을 자주 먹지도 않지만 막상 뜯어서 스프를 털어내고, 남은 가루를 맛본다. 그러면 없던 입맛도 생기곤 한다. 짭잘한 맛이 라면을 왜 먹는지를 알려주는 것만 같다.
삶도 비슷한 느낌이다. 피곤한 아침에 눈을 뜰 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막상 잠에서 깨어나 밖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곳에서 새로운 맛을 매번 보게 된다. 새로운 인생의 경험들.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 펼쳐진다. 인생은 적어도 컵라면보다는 다양한 맛이 있다.
오늘 나는 무척이나 색다른 맛을 보았고 그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나와 오늘을 함께 보내준 분들도 그런 행복감이 있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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