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이곳에서 바라보는 저녁 하늘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퇴근 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과 강남을 찾아온 연인들. 나에겐 무척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 이제는 너무 흔한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는 그리운 풍경이 될 것만 같다.

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무척이나 회의적이다. 지난 수년간 딱히 관점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나마 희망을 가졌던 순간이 몇 달 전 잠깐 있었으나 그마저도 멍청한 지휘관의 실수로 다 엉망이 되었다. 장기로 치면 외통수에 걸린 상황. 이 나라에는 한 줌의 희망도 잘 쥐어지지가 않았다.

어떤 미래가 이 땅에 있을지는 아무도 확답할 수 없겠으나 적어도 이곳을 떠날 때가 왔다는 사실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졌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몫을 값으로 받는 게 당연하다. 남기로 선택한 자가 얻는 몫. 떠나기를 정한 자가 얻는 몫. 나는 내가 본 세계를 따라 해야만 하는 행동을 찾아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야기할 때 종종 어떤 직업이나 회사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고민이라는 것은 거대한 고민 앞에 작은 고민은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전쟁이 눈앞에 있다면 피난을 가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지 불타 없어질 집을 사는 게 고민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길에 대한 고민은 딱히 없다. 큰 비전을 품기로 각오했다면 큰 비전을 품은 값을 치러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젊음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때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선택은 관계마저도 우선순위를 바꾸길 요구한다. 그 많은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택할만한 가치가 있을 때 가장 대담한 선택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확신이 없다면 멀쩡한 집을 내버려 두고 짐을 싸서 온 가족이 피난 가는 건 미친 짓이다. 버려진 집에 남겨진 가구나 쓸모 있는 물건들은 도둑들에게 다 공개된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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